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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칼럼] AI 시대, 왜 다시 '전기수(傳奇叟)'인가: 아날로그적 읽기가 만드는 진짜 전문가도서관 칼럼 2025. 12. 8. 14:37

김홍도, 담배썰기, <단원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그림의 배경은 조선시대 담뱃가게이다. 좌측 하단 책을 읽는 남성(전기수로 추정)이 부채를 부치며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전기수(傳奇叟) : 조선후기 소설을 전문적으로 읽어 주던 낭독가) 1. 머리말: 글을 읽어주는 남자, 전기수의 귀환
조선시대 장터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나타나는 ‘전기수(傳奇叟)’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패설(稗說, 세상에 도는 신기한 이야기)나 삼국지, 서유기 같은 소설을 맛깔나게 낭독해주는 이야기꾼이다. 전기수는 한참 재미가 있을 시점에 갑자기 끊고 입장료를 걷기도 하고, 청중의 분위기를 봐가며 여러 이야기를 섞어서 사람들을 울렸다 웃겼다하던 종합엔터테이너였다. 당시에는 글을 모르는 까막눈이 많았기에 가능한 직업이었다. 글을 읽고 사람들과 공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최근 유튜브가 미디어 매체의 대세가 되면서 수많은 전기수들이 다시 등장하는 느낌이다. 글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는 지금이지만 사람들은 다시금 '전기수'를 찾고 있다. 책을 직접 읽는 대신 유튜버가 요약해주는 '책 리뷰'를 보고, 긴 논문이나 기사를 읽는 대신 AI에게 "3줄 요약해줘"라고 명령한다. 글자는 읽을 줄 알지만, 맥락을 파악하고 긴 호흡의 텍스트를 소화하는 능력은 퇴화하고 있는 '신(新) 문맹'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니 두꺼운 책이나 문서를 읽기보다는 “이거 무슨 뜻이지요?‘라며 전기수에게 부탁을 하는 형국이다.
나는 고고학자로서 도구의 변화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왔다. 석기에서 청동기로, 청동기에서 철기로 넘어가는 순간마다 인류는 거대한 문명사적 전환을 겪었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는 것은 인간이 쓰는 도구가 다시 사람들을 바꾼다는 점이다. 인터넷을 예로 들면, 과거에는 사람들이 쉴만한 공간은 따뜻한 볕이 드는 공원의 벤치였다. 하지만 지금은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곳을 더 선호할 것이다. '디지털'이라는 편리한 도구를 손에 쥔 순간, 우리는 새로운 기술의 통제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도구가 과연 우리를 진화시키고 있는지, 아니면 편리함이라는 달콤한 사탕으로 우리의 두뇌를 퇴화시키고 있는지 냉철하게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2. 구글의 시대에서 AI의 시대로: 편리함의 역설
약 30년 전, 대학에 막 PC가 보급되던 시절을 기억한다. 당시 많은 중진 교수님들은 "직접 펜으로 쓰지 않은 리포트는 인정할 수 없다"며 리포트 제출시에 컴퓨터 사용대신에 원고지를 고집했다. 그리고 이메일의 사용을 거절하고 손글씨와 편지를 유지하던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의 결과는 예상하는 대로이다. 디지털을 멀리하던 세대는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빠르게 사회에서 잊혀졌다. 이후 우리는 '구글(Google)'로 대표되는 검색의 시대를 살았다. 궁금한 것은 검색을 통해서 정보를 얻었고, 도서관의 자료도 검색을 통해 우리와 연결되었다. ’구글의 시대‘에는 수많은 정보의 파편들 속에서 진실을 가려내고, 나에게 필요한 지식을 선별하는 능력, 즉 정보 문해력이 전문가의 자질이었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생성형 AI의 등장은 이 과정마저 생략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우리 대신에 AI가 수많은 정보의 바다에서 빠르게 자료를 찾는다. 이제 정보 문해력을 넘어서 새로운 정보의 맥락을 이어가는 메타 인지의 시대로 바뀌고 있다. 역설적으로 더더욱 탄탄하게 다져진 인문학적 정보와 아날로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시대이다.
단순하게 정보를 모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정보를 우리가 필요하도록 만들어야하기 때문이다. AI시대에는 코딩이나 일러스트같은 작업이 대체되는 대신에 창의적인 인간의 메타인지능력은 더욱 필요하다. 아날로그적인 독서가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이유이다.
아날로그 독서를 운동에 비유할 수 있다. 사람들이 시간과 돈을 들여서 헬스클럽에 가서 트레드밀을 달리는 이유는 자동차가 없어서가 아니다. 반대로 수많은 교통수단이 있기에 인간은 근육의 퇴화를 막기 위해서 억지로 트레드밀을 달리는 것이다. 비단 몸의 근육뿐 아니라 뇌의 능력도 똑같다. 이인아 서울대 뇌인지과학과 교수는 최근 한 강연에서 뼈아픈 지적을 했다. ’이틀 밤을 새워 써야 할 리포트를 AI가 5분 만에 써주면 당장은 편하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 하다 보면, 나중에는 이틀이 아니라 20일을 밤새워도 글 한 줄 못 쓰는 뇌가 된다.‘고 했다. 이것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다. 뇌과학적으로 볼 때 우리 뇌의 해마(Hippocampus)는 공간과 맥락을 파악하며 인지의 지도(Cognitive Map)를 만든다. 처음 보는 건물이나 거리에서 식당을 찾아 다니고 백화점에서 필요한 물건을 파는 곳을 찾는 것은 이런 인지의 능력이다. 지식도 마찬가지다. 난해한 텍스트와 씨름하고,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려 '지적 길 잃기'를 경험해야 비로소 나만의 지식 지도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AI 내비게이션이 운전자의 공간 지각 능력을 앗아갔듯, AI 챗봇은 우리의 '사유하는 근육'을 앗아가고 있다.
3. 디지털 원시사회의 도래와 '부족화'되는 지성
나는 인터넷 혁명에서 AI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현상을 '디지털 원시사회'의 도래라고 부른다. 21세기 디지털 사회는 겉보기엔 화려한 문명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사람들은 다시 고립되고 있다. 과거 원시시대 사람들이 혈연과 지연으로 뭉쳐 폐쇄적인 부족 사회를 이루었듯, 현대인은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정보만을 편식하며 자신들만의 '디지털 부족' 안에 갇힌다.
AI는 이 고립을 가속화할 위험이 크다. AI가 내놓는 답변은 대개 방대한 데이터의 '평균값'이다. 보편적이고 그럴듯하지만, 거기에는 '고유성'이 결여되어 있다. 모두가 같은 AI를 쓰고, 같은 요약본을 읽는다면, 우리의 생각은 획일화될 수밖에 없다. 남들과 다른 독창적인 시각, 즉 '인사이트'는 평균적인 데이터의 조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처절한 경험과 사유의 축적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AI는 수천 시간을 대화해도 '나만의 맥락'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맥락은 "세상과 사람과 부딪히면서 오랫동안 가다듬은 자신만의 고유한 관점"이기 때문이다. AI가 아무리 많은 정보를 제공해도 그 정보의 맥락을 잡지 못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로 남아있을 수 밖에 없다.
4. 왜 다시 '책'인가: 아날로그적 저항의 가치
그렇다면 이 AI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는 길, 아니 AI를 지배하는 '진짜 전문가'가 되는 길은 무엇인가? 나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고전적인 방법, 즉 '아날로그식 독서'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헬스장의 트레드밀로 올라가서 다시 뛰어서 억지로 근육을 유지하듯 내 머릿속 인지능력을 유지시켜야한다는 뜻이다. 인문학은 전쟁에서 가장 미약해보이는 보병과 같다. 전쟁터에서 아무리 최첨단 드론과 미사일이 날아다녀도, 결국 고지에 깃발을 꽂아야 전쟁이 끝이 난다. 마찬가지로 AI가 아무리 화려한 정보를 쏟아내도, 그 정보의 가치를 판단하고, 엮어내고,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인간의 인문학적 소양이다.
대학 도서관은 이런 아날로그식 독서와 사유가 가능한 몇 안 되는 물리적 공간이다. 서가를 천천히 거닐며 우연히 마주친 책을 집어 드는 행위, 조용한 열람실에서 긴 글을 끝까지 읽어내는 경험은 디지털 알고리즘이 대신해 줄 수 없는 ‘사고의 우회로’를 열어준다. 이 '아날로그식 독서'는 단순히 종이책을 넘기는 행위만을 뜻하지 않는다. 비록 걸리는 시간은 길지만 그 이득은 크다.
첫째, 정보의 원천을 직접 대면하는 행위다. 요약만으로는 자신의 정보를 만들 수 없다. 텍스트의 풍부한 정보들을 읽으면서 우리의 뇌는 더 많은 지식을 생성하고 조합한다. 텍스트의 숲을 헤치고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저자의 사유 체계를 내 것으로 체화(體化)할 수 있다.
둘째, '느린 생각'을 위한 의도적인 멈춤이다. 디지털 매체는 우리를 끊임없이 다음 클릭으로 유도한다. 반면, 책은 멈춤을 허용한다. 읽다가 이해가 안 되면 멈춰서 생각하고, 여백에 메모를 하며 저자와 대화한다. 얼핏 쓸모없어 보이는 이 시간들이야말로 뇌가 정보를 지식으로, 지식을 지혜로 바꾸는 숙성의 시간이다.
셋째, 아날로그적 지식 습득은 인간의 본성에 최적화된 방법이다.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지만, 인간의 신체와 두뇌 구조는 4~5만 년 전 현생인류와 거의 차이가 없다. 우리는 여전히 사람의 눈을 보고 감정을 읽어야 하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소설을 읽으며 타인의 삶을 시뮬레이션하고, 역사를 읽으며 인간의 어리석음과 위대함을 배우는 과정은 AI가 흉내 낼 수 없는 '공감 능력'과 '직관'을 길러준다.
5. 21세기의 전기수가 되어라
모두가 AI에 의존해서 지식을 얻는 시간이 지속되면 조만간 책을 읽고 요약해주는 ’디지털 전기수‘가 등장할 것이다. AI 시대의 진정한 전문가는 AI보다 코딩을 더 잘하거나 인포그래픽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다. AI가 내놓은 결과물이 사실인지 검증할 수 있고, AI가 흩어놓은 파편들을 모아 인간을 위한 서사(Storyline)로 엮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능력은 구글링이나 AI가 만들어줄 수 없다. 이제 현대사회는 암기를 잘해서 시험을 잘치는 사람보다 '디지털 전기수'가 더욱 필요해지고 있다. 과거의 전기수가 글을 모르는 이들에게 이야기를 읽어주듯이, 오늘날에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맥락을 잃은 사람들에게 '진실'과 '의미'를 읽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가장 아날로그적인 것이 가장 첨단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 이것이 내가 고고학적 통찰로 바라본 AI 시대의 생존법이다. 조선의 전기수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듯, 여러분이 깊은 인문학적 소양으로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울림을 전하는 21세기의 지식인이 되기를 바란다.
- 강인욱(중앙도서관 관장 / 사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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