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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서관, 아름다운 융합의 공간 - 강인욱(중앙도서관 관장 / 사학과 교수)
    도서관 칼럼 2025. 3. 28. 15:29

     

     

     

     

      도서관, 아름다운 융합의 공간

     

      지난 2024년에 읽었던 책 중에 하버드대 영문과 교수인 Martin Puchner(마틴 푸크너)가 쓴 책 컬처-문화로 쓴 세계사가 인상적이었다. 이 책은 원래 2023년에 뉴욕에서 발표되었고 원제는 문화 - 우리의 이야기, 동굴의 예술에서 K-Pop까지(Culture: The Story of Us, from Cave Art to K-pop)”이다. 한국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가 '케이팝을 이야기했다니 귀가 번쩍 뜨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는 한국팝을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진정한 문화의 주인공은 거대한 기념물이나 문명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서로 교류하고 융합하는 마치 뇌관과 같은 보이지 않는 문화요소들이 진정 역사를 이끈 주인공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흔히 찬란한 문화라고 하면 한 국가나 민족을 대표하는 유구한 전통또는 원조를 떠올린다. 피라미드나 만리장성 같은 거대하고 으리으리한 기념물을 떠올린다. 푸크너의 문화 이야기는 그런 우리의 선입견을 깬다. 그는 우리가 잘 모르고 사소하게 지나치기 쉬운 세계를 움직인 15개의 유물을 들어서 세계를 움직였던 우리도 모르는 문화의 이야기를 한다. 푸크너는 문화라는 것은 순수한 것이 아니라 접촉하고 결합할 때 광범위한 영향력을 끼친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화약과 같은 것이다. 푸크너는 보이지 않는 융합반응을 일으키는 15개의 뇌관같은 문화 요소를 이야기한다. 흔히 노하우는 잘 알고 있다.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것인데, 푸크너는 노와이Know-why’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왜 그렇게 된건지 알아야한다는 뜻이다. 푸크너가 소개한 문화는 세상을 움직인 보이지 않는 노와이인 셈이다. 비유를 하자면 스마트폰을 좀더 정교하고 빠르게 만드는 방법은 각 회사의 노하우이다. 하지만 왜 그들은 스마트폰이라는 기계를 만들었는지 작업가의 속마음을 파악하는 것이 노와이이다.

     

      푸크너가 제기하는 문화의 힘은 바로 보이지 않는 문화의 융합이라는 힘이다. 지금은 지식의 블렌딩은 바로 도서관에서 일어난다. 거대한 문화와 지식을 쌓아놓은 책들 사이에서 말이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던 나에게는 오래된 버릇이 있으니 서고를 다니면서 지식의 방랑을 즐기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새로운 지식과 이야기를 만나면서 다양한 지식이 내 두뇌에서 섞이는 그 과정을 무척 즐긴. 아마 도서관과 책을 좋아하는 많은 분들이 공감할 것 같다. 도서관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오감으로 느끼는 사피엔스의 본능이기도 하다. 전자책과 PDF 때로는 신통한 답까지 주는 AI가 우리에게 있지만 여전히 그들이 우리에게 주는 융합의 감동은 크지 않다. 지난 수 백만년간 인간은 오감으로 세상을 느끼도록 진화했고, 최근 5천년간 인간은 책이라는 매체로 지식을 습득하며 진화했다. 한번 바늘귀에 실을 넣거나 미세한 프라모델을 조합한다고 생각해보자. 아마 자기도 모르게 손의 움직이면서 혀로 입술을 추기는 등 신체 여러 부분과 연동하여 반응을 한다. 물리적인 책을 손으로 집고 그 책의 냄새를 느끼며 손으로 페이지를 넘기는 과정은 불필요한 동작이 아니라 지식이 뇌의 피질세포에 새겨지는 것과 연동해서 일어나는 과정이다.

     

      지식의 실크로드를 넘나들던 역사

     

      수 천년간 동서를 오가며 문명이 교류했던 실크로드는 그들 사이에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건 여행으로 만들어졌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이동하고자 한 것은 바로 불교의 경전과 같은 다른 사람들의 정보였다. 현장의 [대당서역기], 혜초 [왕오천축국전]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정보는 바로 그러한 고행의 여정이다. 이들이 가져온 책은 일련의 융합과정을 일으키며 새로운 문명으로 이어졌다. 실크로드의 진정한 가치는 목숨을 걸고 교류한 정보의 융합에 있었다. 지금은 우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교는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2500년전 인도와 파키스탄에 살던 샤키야무니(=석가모니)의 이야기다. 그가 우리 문화의 일부가 된 이유는 현장과 혜초와 같은 사람들의 여행 덕분이다. 여행으로 얻어진 새로운 문화요소는 기존의 문화와 섞여서 새로운 강력한 문화로 탄생한다. 혼종이 주는 강점이다. 진정한 강국은 이러한 혼종에서 태어난다. 피자가 이탤리가 기원이고 햄버거가 독일의 함부르크이지만 우리는 그 음식을 미국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문화는 혼종이 될 때에 가장 큰 파급력을 지닌다. 과거에는 쉽게 정보를 가져올 수 없었기에 목숨을 건 실크로드를 넘나드는 여정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거대한 지식의 실크로드를 바로 도서관에서 경험할 수 있다.

     

      아름답지만 외로운 여정

     

      다시 푸크너의 책을 돌아가 보자. 그의 책은 K-Pop으로 마무리된다. 에필로그에서 그는 K-Pop을 이러한 혼종과 연결을 통해 탄생한 21세기적인 문화현상으로 규정한다. 한국의 전통문화와는 거리가 멀지만 전세계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요소를 모아놓은 음악 장르가 되었다고 본다. 비단 음악뿐이 아니다. 도서관은 수많은 정보가 오고가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와 같다.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지식을 모아놓은 놀라운 곳이다.

    수많은 지식이 머릿속에서 융합하고 아름다운 결과물이 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외로움이다. 수많은 책 속에서 나와 똑같은 치열한 삶을 살면서 남긴 사람들의 흔적을 따라가보는 것은 아름답지만 고독한 여정이다. 단순하게 지식을 얻는 것을 넘어서 그렇게 필자는 책을 썼을까를 생각하는 노와이(Know-why)'를 생각하며 지식의 융합을 한번 느껴보자.

    도서관은 단순한 지식의 저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만나고 융합하는 공간이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 우리는 단순히 정보를 읽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지식과 사유를 창조한다. 문화는 고립될 때가 아니라 연결될 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도서관은 바로 그 연결의 장이자,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거대한 문화의 실크로드이다.

     

      수많은 도서관 중에서도 경희대 중앙도서관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그곳의 거대한 돔과 원형 서가는 마치 끝없는 하늘을 탐험하는 방주와 같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안에서 지식의 항해자가 된다. 도서관에서 떠나는 약간은 외롭지만 아름다운 융합의 여행에 올해에도 많은 경희인들이 함께 하길 바란다.

     

     

    강인욱(중앙도서관 관장 /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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