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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서관 칼럼] 디지털 원시시대의 도서관
    도서관 칼럼 2026. 4. 29. 08:58

     

     당신은 구석기시대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미개한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만약 우리가 휴대폰이나 일체의 문명의 도움이 없는 숲속에 홀로 남겨지면 과연 며칠이나 생존할 수 있을까. 아마 2~3일 버티기도 힘들 것이다. 과거에서 현재 어디를 가도 제대로 살아남기 어려운 사람은 바로 21세기의 현대인일테니 이야말로 생존에 취약한 존재가 아닐까. 우리는 흔히 과거는 미개하고 현대는 발달된 문명시대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이다. 우리는 문명의 이기에 둘러싸여 갈수록 인간으로서의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40cm 돌도끼가 던지는 질문

     

     최근 경기도 연천 전곡리에서 길이 40cm, 무게 10kg에 달하는 초대형 주먹도끼가 발견되었다. 세계적으로 발견된 주먹도끼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지금까지 최대 크기로 알려진 사우디아라비아 알 울라 유적 출토품(무게 약 4~5kg)을 훨씬 능가한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도끼가 놓인 맥락이다. 더욱이 이 석기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규암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대신에 석질이 아예 다른 화강편마암이었고, 발견 당시에 이 대형 석기의 주변에는 이 돌을 깰 때 생기는 부스러기들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누군가 먼 곳에서 일부러 화강편마암을 골라서 가공한 뒤 들고 와서 그 자리에 놓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이 무게로는 사냥도, 가공도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돌도끼를 왜 만들었을까. 아마 공작새가 불필요하리만큼 화려한 꼬리를 펼치듯,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거나 집단의 의례에 쓰였다는 뜻이다. , 30~20만년 전 연천 전곡리의 사람들은 단순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원시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주먹도끼에도 생존의 필요를 넘어서는 무언가상징, 미감(美感), 그리고 공동체의 언어를 추구했다.

     구석기인들의 주먹도끼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또 다른 사실에 놀라게 된다. 좌우 대칭이다. 실용적 기능만 따지자면 굳이 좌우 대칭을 맞출 필요가 없다. 아프리카, 유럽 그리고 한국의 연천 전곡리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주먹도끼는 한결같이 정교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 처음부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존재였음을 보여준다. 라스코 동굴 벽화의 생동감 넘치는 들소를 보라. 정식 미술 교육을 받은 현대 화가 가운데 그보다 잘 그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연천 전곡리 출토 가장 큰 대형 도끼 (사진 제공 : 강인욱 중앙도서관장)

     


    인간의 역사는 망각의 역사다

     

     돌을 깨는 구석기인들은 도구 하나 하나에 자신들의 혼을 다해서 예술적인 감각을 표현할 수 있는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흔히 '누층적 문화 진화'라 불린다. 최근 진화학의 연구를 통해서 도구는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님이 밝혀졌다. 침팬지도 도구를 만든다. 수달도 돌을 이용해 조개를 깬다. 그러나 침팬지가 만든 도구는 그것으로 끝이다. 가르쳐 주지 않는다. 쌓이지 않는다. 인간이 다른 이유는 바로 지식을 다음 세대로 넘기기 때문이다. 내가 발견한 것, 내가 깨달은 것, 내가 다듬은 기술이 다음 사람에게 전달되고, 그 사람은 거기서 다시 발전시킨다. 수십만 년에 걸친 이 선순환이 오늘의 인간을 만들었다.

     

     독일 쇠닝겐 유적에서 발견된 30만 년 전의 나무 창은 오늘날 실험을 해보니 70m를 날아가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구상 어떤 동물도 70m 밖의 먹이를 잡을 수 없다. 가장 허약한 신체를 지닌 인류가 가장 넓은 사냥의 능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이것은 수세대에 걸친 지식의 축적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주먹도끼 하나하나를 깨는 행위는 단순한 제작이 아니라 '어떻게 만드는지'를 아이에게 가르치는 교육이었고, 그 교육이 반복되면서 인류의 두뇌와 기술은 함께 진화했다.

     

    쇠닝겐의 창 출토 장면 (출처 : 위키피디아)

     

     하지만 인간의 역사에 무조건 지식을 쌓는 것만은 아니다. 인간의 역사에는 진화와 함께 망각도 있었다. 자동차가 등장하자 말을 타는 기술이 사라졌다. 스마트폰이 나오자 사람들은 전화번호를 더 이상 외우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글을 대신 쓰고 영상을 만들어 주면서 우리는 또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인간은 편리함을 얻을 때마다 그만큼의 능력을 조용히 반납해왔다. 그 반납이 쌓이면 어떻게 되는가. 역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지나치게 한 환경에 특화되어 버린 네안데르탈인은 기후가 바뀌자 그 강점이 되려 약점이 되어 사라졌다. 고도로 발달한 인더스 문명은 교역로 하나가 끊기자 사람들이 스스로 숲으로 흩어져 버렸다.

     


    도서관, 누층적 문명의 기억을 지키는 곳

     

     지금 우리는 어쩌면 새로운 의미의 원시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AI가 사고를 대신하고, 알고리즘이 선택을 대신하고, 검색이 기억을 대신하는 시대는 편리하지만 그만큼 인간의 능력은 약해진다. 구석기 도구가 인간의 두뇌 진화를 이끈 것과 반대로 오늘의 디지털 도구가 인간의 어떤 능력을 퇴화시키고 있는지 좀더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도서관은 바로 이 지점에서 본래의 빛을 발한다.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보관하는 창고가 아니다. 도서관은 인류가 수십만 년에 걸쳐 쌓아온 누층적 지식의 저장소다. 구석기인이 주먹도끼 만드는 법을 다음 세대에 전달했듯, 도서관은 앞선 세대가 발견하고 깨닫고 다듬은 것들을 다음 세대로 이어준다. 도서관이 보존하는 것은 AI가 내어놓는 답이 아니라 인간이 질문하고 씨름하고 틀리고 다시 생각하는 과정 그 자체이다.

     구석기인의 주먹도끼를 돌아볼 때 우리는 그 돌에서 수십만 년의 인간성을 읽는다. 도서관의 책 한 권도 마찬가지다. 그 안에는 한 인간의 삶과 시대와 질문이 새겨져 있다. 알고리즘은 오늘 가장 많이 검색된 것을 보여주지만, 도서관은 아무도 묻지 않는 날에도 그 질문들을 조용히 간직한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세계의 어느 나라도 경험하기 어려운 변혁을 거치고, 또 그 과정에 서있다. 변화의 시대일 수록 우리의 삶을 지켜내는 것은 결국 다양한 변화에 대한 유연성, 그리고 인간성의 확신이 절실이 필요함을 인류 문명의 역사는 조용히 보여주고 있다. 문명이 흔들릴수록, 인간이 스스로 얇아질수록, 도서관은 더 깊이 빛난다. 그것은 구석기 동굴 벽면의 불꽃처럼, 어둠이 짙을 때 비로소 제 빛을 온전히 드러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강인욱(중앙도서관 관장 / 사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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