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옛 사람들은 바둑, 장기와 같은 전통놀이 속에서 스스로가 당면한 문제에 대하여 깊이 고찰하거나, 또는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고는 합니다. 이러한 옛 게임들은 표현의 형태가 단순하고 함축적인 만큼, 게임 자체가 의도를 가지고 즐기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제시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즐기는 사람이 자신의 맥락 속에서 추상적으로 표현된 게임을 통하여 생각을 구체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후로, 게임은 천천히 좀 더 복잡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개인용 컴퓨터의 등장과 보급 이후로 게임의 모습은 이제 물리적인 표현에서 벗어나 추상공간 속에서 구체적인 세계를 재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전의 바둑과 같이 게임 스스로가 이야기를 가지지 않아도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은 이를 통해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 왔습니다. 프로게이머, E-Sports 등도 그 한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RISS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게임 관련 논문들>

 

  한편, 게임의 표현에 있어 점차 한계가 사라지면서 게임은 고전 소설이나 이야기에서 그 소재를 차용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 자신의 이야기를 게임에 담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독자적인 내용들은 처음에는 무척이나 간단한 이야기들이었지만, 기술의 발전 및 차별화에 대한 욕구 속에서 게임의 외형만큼이나 복잡해집니다. 이러한 복잡하면서도 독자적인 내용을 가진 최초의 게임들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기존의 선악 관계를 지우고 철학을 통해 표현한 심오한 세계를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자유롭게 탐험할 수 있도록 설계된 울티마4 (Ultima4)가 있습니다.

<울티마 4를 시작하며, 당신의 성격을 결정짓는 질문들>

 

 


2. 인문학과 게임의 조우 - RPG

 

  울티마4를 비롯한 미국 등지의 컴퓨터 기반 RPG(Role-Playing Game : 가상의 세계 속에서 플레이어가 ‘역할’을 설정해 수행하는 게임)들은 그 모태가 된 대면형 RPG들이 그러했듯 개인의 선택과 그 결과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개인은 게임 세계 속에서 주어진 자신의 역할, 게임 세계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사건에 대한 실마리를 토대로 어떠한 문제에 대하여 선택을 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입니다. 이는 현실 세계에서 우리의 선택이 다양한 이유(도덕, 사회, 개인 등)로 인하여 제한적인 것과 달리 비교적 더 많은 자유(무조건 옳아 보이는 일을 해내거나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등)를 플레이어에게 선사합니다. 선택을 중시하는 RPG들이 어려운 접근성(다량의 지문, 직관적이지 않음, 생각하게 만듦)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자유와 이를 통한 간접 체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건을 해결하는 데 있어 다양한 선택을 하게 만드는 RPG - Pillars of Eternity>


   게임 시나리오 작가들은 이러한 방대한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참조합니다. 철학, 역사는 물론이고 게임이 제시하는 사건/인물들이 공감가고 몰입감을 가질 수 있도록 심리학, 시사 등을 통해 인물과 사건에 현실감을 부여하고 어문학을 활용해 인물과 단체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합니다. 
  하지만 RPG의 선택과 결과는 어디까지나 게임 제작자가 설정한 한계 속에 있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지문이나 키워드는 한정적이고, 그 결과가 영 찜찜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형태의 지문은 장점도 있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할 지 몰라 단점도 됩니다 - Fallout 4>


  지문이 너무 많은 경우, 오히려 소설로 읽어야 적당한 것을 모니터 속 게임으로 옮겨버리는 바람에 집중이 되지 않고 즐기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게임을 하는 것인지 소설책을 보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많드는 많은 지문들 - Pillars of Eternity>


  이런 단점들을 보완하면서도 게임의 재미를 잃지 않고, 인문학적 성찰을 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게임 중 하나로 Frictional Games의 SOMA가 있습니다.

 


3. SOMA - 인문학을 비롯한 융합학문은 게임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는가?

 

 

<Frictional Games - SOMA>

 

  SOMA는 흔히 말하는 공포 게임 중 하나로, 1인칭 시점에서 진행하며 시종일관 깊은 바다 속의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그러나 다른 공포 게임, 공포 영화와 다르게 깜짝 놀라는 장치(Jump Scares) 및 잔인한 장면을 통해 사람에게 공포감을 주기보다는, 추상적인 공포, 즉 비일상적인 경험과 제한된 대화 속에서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공포를 게임을 하는 사람들에게 선사합니다.

  물론 게임 안에는 말초적인 공포를 자극해주는 존재들이 엄연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표면적인 두려움을 준다면, 게임 내내 펼쳐지는 인간의 존재, 인공지능, 의식, 복제 등과 관련한 은유적인 표현과 대사들은 미지의 것에 대한 심리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킵니다. 거기에 게임을 하는 사람의 의식이 개입되면, 그것은 공포감을 넘어선 – 마치 심연 속에서 몸부림치는 것과 같은 어떤 감각을 제공합니다.

 

<SOMA의 특전 영상 중 일부. 자신의 뇌를 스캔한 데이터가 들어간 기계와 대면하고 있는 남자>


  바로 이러한 부분이 고작 10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고 그래픽도 뛰어나지 않은 이 게임을 조용한 걸작으로 만들어줍니다. 게임은 그 속에서 어떠한 답도 내려주지 않습니다. 전반적으로 게임이 준비한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지만, 몇몇 상황에서 플레이어의 선택이 주어지고, 그 결과는 기존의 RPG처럼 명확하게 내려지지 않습니다. 즉, 선과 악, 이득과 손실이 없이 그저 플레이어는 자신의 기분과 생각에 맞춰 선택합니다. 마치 현실세계 속 우리들과 같이 말입니다. 그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결과를 판단하는 것은 선택을 한 플레이어의 몫입니다. 게임이 준비한 이야기 역시 명쾌한 해답을 그린다기 보다는, 하나의 모호한 현상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또다시 현상에 대하여 생각을 하게끔 만듭니다. 그 생각과 판단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끝낸 이후에도 계속해서 변화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질문과 답이 됩니다.

 

<게임의 내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게임 초반의 도서 - SOMA>


  게임을 통해 살아 있는 사고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앞서 RPG의 시나리오 작가들이 그러했듯이, 인간에 대한 탐구인 인문학이 기초가 됩니다. 그러나 SOMA는 여기서 나아가, 게임의 배경과 주요 사건들을 설계하기 위해 과학도 심도 있게 다루었습니다. 게임의 배경이 되는 해저의 모습, 주요 소재가 되는 인공지능에 대한 이해가 그것입니다. 이렇게 준비된 배경은 인문학적인 탐구들과 어우러져 게임 속에서 수많은 인물들이 하나의 상황에 대해 다양하게 반응하도록 만들고, 그러한 인물의 행동과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플레이어는 무한에 가까운 상상을 이뤄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앞서 언급된 두 종류의 게임, [선택 중심의 RPG]와 [SOMA]는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화려한 화면, 액션성을 주로 내세우는 게임과 달리 이들의 화면은 사람들의 눈길을 확 잡아끌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탄탄한 이야기와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상상/사고를 자극하는 게임 설계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는 요소입니다. 이와 같은 게임들이야말로 단순한 유희를 넘어서 하나의 상호작용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인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인문학적 사고는 물론,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한 수많은 지식들이 한데 어우러진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의 생각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지금 하고 있는 승부 중심의 게임에 질리셨거나, 색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으시다면 스스로가 선택을 하고 생각해볼 수 있는 게임들에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떠신가요? 또는 자신만의 세계, 자신의 생각을 게임으로 표현해 보고 싶으시다면, 도서관의 수많은 책 속에서 영감을 찾아보는 것은 어떠신가요? - 물론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 작성 및 편집 : 중앙도서관 주제정보팀 이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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