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관 칼럼] AI가 당신의 호흡이 되는 시절, 도서관의 자리도서관 칼럼 2026. 6. 29. 09:49

스마트폰을 열면 AI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무엇을 검색할지 묻기도 전에 다음 문장을 제안하고, 긴 논문을 몇 줄로 요약해 주며, 외국어 자료를 매끄러운 우리말로 옮겨놓는다. AI의 발달에 걱정하는 시간도 잠시, 어느덧 AI는 도구를 넘어 우리의 호흡처럼 자연스러워졌다. 들이쉬고 내쉬는 일을 의식하지 않듯, 우리는 더 이상 검색하고 번역하는 수고를 의식하지 않는다. 편리한 시대다. 가장 먼저 변화된 것은 통번역이고, 수많은 지식이 쌓여있는 도서관도 그런 변화의 중심에 있다.
1. 번역으로 쌓은 역사
고고학자로서 나는 인간이 말을 주고받아 온 가장 오래된 흔적들을 들여다보며 살아왔다. 그 흔적들이 한결같이 말해주는 것이 하나 있다. 통역과 번역의 역사는 곧 인간이 서로를 이해하려 애써온 역사라는 사실이다. 기원전 23세기 이집트의 한 무덤 비문에는 '통역관 감독'이라는 직함이 새겨져 있다. 인류는 문명의 첫 새벽부터 다른 말을 쓰는 이를 이해하기 위해 전문가를 두었던 것이다. 5세기 동로마의 에페소에서는 성모 마리아를 가리키는 그리스어 단어 하나를 어떻게 옮길 것인가를 두고 종교가 둘로 갈라졌다.
단어 하나의 번역은 단순한 종교를 넘어서 한 문명의 운명을 바꾸기도 했다. 바로 동아시아에서 번역이 문명을 빚어낸 가장 큰 사례는 불경의 한역(漢譯)이 좋은 예다. 초기 불교가 중국에 들어왔을 때, 인도의 추상적 사유를 한자로 옮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거의 제로 베이스(無)에서 새로운 말을 빚어내는 직업을 한 사람이 4세기의 구마라집(쿠마라지바, 344~413)이다. 지금의 중국 신장 지역 쿠차 출신인 그는 실크로드 출신답게 여러 언어에 능통했고, 이후 장안에 와서 수백 권의 불경을 한문으로 옮겼는데, 그의 번역은 천오백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입에 그대로 살아 있다.
불교신자가 아니어도 그 뜻을 잘 아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이 좋은 예다. 색(色)은 산스크리트어 '루파', 곧 눈에 보이는 모든 물질을 뜻하고, 공(空)은 '슌야타', 곧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인도 특유의 사유를 가리킨다. 형체도 없는 이 추상적 개념을 구마라집은 '비어 있다'는 뜻의 한자 공(空)에 담아냈다. 인도의 철학이 만든 개념이 한자로 번역되어 새로 태어나면서 동아시아에서는 공(空)이라는 개념이 재창조가 되었다. 그는 무조건 번역만을 고집하지 않았으니, '나무아미타불'이나 '반야바라밀다' 같이 뜻으로 풀지 않고 산스크리트어를 원음 그대로 한자로 바꾸기도 했다. 무엇을 풀고 무엇을 남길지를 가르는 그 섬세한 선택이야말로, 원문의 마음을 헤아리는 번역가의 일이었다.
구마라집의 뒤를 이어, 소설 『서유기』 삼장법사의 모델로 알려진 현장(602~664)이 등장한다. 그는 직접 인도까지 가서 원전을 구해 와, 구마라집보다 한층 원문에 충실하게 다시 옮겼다. 두 사람의 번역을 나란히 놓으면 번역가의 선택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가 한눈에 보인다. 우리에게 친숙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구마라집의 번역이고, 같은 보살을 현장은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로 옮겼다. 같은 경전을 두고 갈린 두 번역가의 선택은 오히려 불교를 더 풍요롭게 만들었다. 그렇게 옮겨진 경전이 천오백 년 동안 동양인의 정신세계를 떠받쳤다. 번역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건너가 문명이 된 것이다.

키질석굴앞의 구마라집 동상 (사진 제공 : 강인욱 중앙도서관장) 
몽어노걸대-조선시대 몽골어 교본 (출처 : 위키피디아)
2. AI시대 우리의 마음을 번역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AI가 모든 말을 옮겨주는 오늘, 번역가의 그 섬세한 일은 사라지는 것일까. 흥미롭게도 AI가 가장 먼저 손을 내민 곳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였다. 구글의 한 인공지능은 글자가 지워진 고대 그리스 비문의 빈자리를 채워, 인간 전문가 혼자서는 닿지 못하던 복원의 정확도를 크게 끌어올렸다. 기계는 분명 강력한 도구다. 그러나 기계는 비문에 새겨진 기호의 패턴은 읽어도, 그 기호 뒤에 선 사람의 두려움과 기원(祈願)까지 읽어내지는 못한다. 자구(字句)를 옮기는 일과 마음을 옮기는 일은 끝내 다른 차원의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디지털 시대 도서관의 자리가 있다. 21세기의 도서관은 더 이상 책만을 쌓아두는 공간은 아니다. 검색은 AI가 도와주고, 내가 꼭 보아야할 자료도 AI가 1차로 선별해서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도서관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나는 도서관이야말로 '자구의 번역'을 넘어 '마음의 번역'이 일어나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AI는 책 한 권을 세 줄로 요약해 줄 수 있다. 그러나 그 세 줄은 저자가 평생을 걸어 도달한 마음에 우리를 데려다주지 못한다. 한 권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따라 읽으며 낯선 저자의 세계로 건너가는 일, 시대와 언어가 다른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는 일, 그것은 요약이 아니라 번역이며, 자구가 아니라 마음의 번역이다. 도서관은 바로 그 느린 번역이 허락되는 자리다.
구마라집이 산스크리트어의 울림을 일부러 남겨 두었듯, 도서관은 효율이 미처 옮기지 못한 마음의 결을 지키는 곳이다. AI가 우리의 호흡이 된 시절일수록, 우리에게는 숨을 고르고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천천히 건너가는 자리가 더 절실해진다. 기계가 단어를 대신 옮겨주는 시대일수록, 다른 세계를 직접 이해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더욱 귀해진다. 수만 권의 책이 꽂힌 서가 사이를 천천히 걷는 일이 여전히 소중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강인욱(중앙도서관 관장 / 사학과 교수) -
'도서관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서관 칼럼] 디지털 원시시대의 도서관 (0) 2026.04.29 [도서관 칼럼] AI 시대, 왜 다시 '전기수(傳奇叟)'인가: 아날로그적 읽기가 만드는 진짜 전문가 (0) 2025.12.08 [도서관 칼럼] 기록 전쟁의 현장에서 : 하얼빈 731 전시관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0) 2025.09.30 [도서관 칼럼] 바벨탑과 AI : 도서관의 미래를 위한 성찰 - 강인욱(중앙도서관 관장/사학과 교수) (1) 2025.06.18 도서관, 아름다운 융합의 공간 - 강인욱(중앙도서관 관장 / 사학과 교수) (0) 2025.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