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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독의 찬미, 간결함의 미학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경희인의 서재/사서가 펼쳤던 책 2019. 8. 30. 10:00

    사서가 펼쳤던 책_고독의 찬미, 간결함의 미학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 미셸 슈나이더 저 / 동문선 출판 (2002년 발행) [링크를 누르면 도서관 소장정보로 이동]

     

     

    사진 출처

     

     

    글렌 굴드(1932-1982).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 바흐 건반악기의 개성 넘치는 해석으로 유명하고, 독창적이고 명징한 피아니즘을 특징으로 한다. 음악에 대한 해석뿐 아니라 삶의 행동양식에 있어서도-여름에도 긴 코트를 입었고, 손을 보호하기 위해 늘 장갑을 끼고 다녔으며, 다리 끝에 고무를 달아 개조한 본인의 피아노 의자에 앉아 연주했고, 연주할 때에는 허밍을 하는 등- 기인의 면모를 보여 그의 천재성이 외적으로, 대중적으로 더 도드라져 보이기도 했다. 국내에도 여러 권의 책이 번역되어 출간되어 있으며 영화나 그래픽노블 등의 대상이 되는 등 여전히 문화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글렌 굴드는 어린 나이에 연주자로 데뷔했고 1955년에 처음으로 발매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연주가 큰 관심을 받으면서 대중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는다. 하지만 30대 초반에 돌연 공연 은퇴를 선언하고 이후에는 스튜디오 작업만을 고수한다. 그는 특히 바흐 연주로 유명하고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그 중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굴드는 이 곡을 20대인 1955년, 그리고 말년인 1981년에 두 번 녹음하여 음반을 발매했는데, 두 버전은 각각 37분, 51분의 러닝타임을 갖고 있어 속도감만으로도 같은 곡을 얼마나 다르게 연주했는지 알 수 있다. 이 곡은 아리아로 시작하여 30개의 변주곡 이후에 다시 아리아, 즉 아리아 다 카포로 끝나는 구조를 갖는다.

     

    유려한 문체로 글렌굴드의 삶을 다룬 미셸 슈나이더의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는 이 변주곡의 구조를 따라 글을 써내려간다. 글렌 굴드가 돌연 은퇴를 선언하는 인상적인 지점에서 아리아를 시작하여, 30개의 변주곡처럼 그의 삶의 다양한 면모를 차근차근 확인해간다. 그 안에서 화자의 일부는 굴드를 오랫동안 사랑해 온 찬미자로서, 일부는 굴드 자신으로서 이야기를 서술해 나간다.

     

    미셸 슈나이더가 굴드의 정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큰 부분으로 여기는 것은 혼자있음, 고독이다.

     

    1964년 11월 11일, 그가 강연을 한 토론토 왕립 음악원 학생들이 그에게서 들은 충고는 단 한 마디였다. "혼자 있으십시오. 은총이라고 할 만한 명상 속에 머무르십시오."

     

    작가는 고독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혼자 있다고 꼭 고독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고독은 물론 '다른 사람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만 이 순간 나는 나 자신을 벗삼고 있다. 반면 내가 혼자 있든 누구와 함께 있든 나 자신이 내게 결핍되어 있을 때, '내게 결핍되어 있는 그 누구'가 다름아닌 나 자신일 때, 이런 상태는 고립이다. (반대로 사랑은 상대방이 거기 있을 때조차 그가 그리운 상태를 말한다.) 고독 속에 있다는 것은 상대방이 거기, 내 안에 있다는 확신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상대방과 내가 모두 결핍되어 있는 단절도 있다.

     

    그리고 굴드가 고독 속에서 하고자 했던 것을 책 속에서 찾자면 이런 것이다:

     

    굴드의 미학은 발견을 돕는 미학이다. 본능적으로 연주가들은 제거하기보다는 첨가하는데, 그의 미학은 제거하는 편을 택한다. 영감이라든지 단숨에 해치우는 것을 경계하고, 오랫동안 명상된 해석이 있은 다음의 연주, 분명 이런 것이다. 굴드, 그는 피아노를 연주하기보다 피아노에 있기 위한 한 방법이다.

    하지만 더 나아가 가면을 벗게 한다든지, 직접적인 것을 거부하는 데까지 이어진다. 그의 그런 직접적인 연주는 매체와 매개물의 놀라운 축적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데 일체의 패러독스가 있다.

    한 예로서 <골트베르크> 첫 부분의 '아리아'를 들어 보자. 그의 연주가 표현하고 있는 것보다 더 헐벗고 멋을 부리지 않은, 그런 연주를 생각해볼 수 있을까? 이곳에선 미처 생각도 못한 순간에 음악이 태어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런데 이 순진한 '사라방드' 만큼이나 많은 생각과 고려를 거친 녹음은 없다. 우선 굴드는 원래의 순서를 뒤집어 '아리아'를 30개의 변주 다음에 녹음했다. 그리고 몇몇 소절들은 21회나 연주한 다음 마지막 연주만을 택했다. 이처럼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까닭은 무엇인가? 가장 간결한 것에 대한 추구와 최소한의 것에 대한 욕구라는 예술의 개념을 근거로 삼고 있지 않다면 말이다. 전개되는 곡의 깊이에 대해 속단해서는 안 되었다. 그런데 반복 연주를 통한 불필요한 표현 일체를 '지워 나가지' 않고서는 아주 중성적인 개념들의 질서 속에 '아리아'를 두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일체를 연주해 보고, 일체의 표현 방식을 알고 있어야 했다. 최초의 몇 마디를 발설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서 그의 연주는 지고한 것이 된다. 그는 우회를 통해 정수에 도달한다. 그리고 욕구의 긴장을 통해서가 아닌 (그렇다고 긴박감도, 방법론도 제외시키지 않으면서) 일종의 순화를 통해 미(美)를 건드린다.

    굴드는 악기의 고독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싶어했다. 헐벗은 연주. 악기가 미혹시킨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장식적인 기능을 삭제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바흐의 장식음들을 그는 마치 장식음이 아닌, 악절의 다른 음들과 똑같은 멜로디와 화음의 가치를 지닌 음들처럼 연주한다. 이들의 필연성과 절박함을 발견하기 위해서인 양, 분해되어 나온 뚜렷한 음들로 천천히 연주한다. 그러므로 페달이 사용되지 않는다. 페달은 옷을 입히고 가리기 때문이다. 그는 음악의 몸이 심연 속으로 빠져들어가기를 원했다. 우리의 몸이 인위적인 장식들을 박탈당한 채 벌거숭이가 되어, 살덩이의 치욕 속에 버려져 죽음 속으로 가듯이.

     

    이 책을 통해 작가는, 그리고 글렌 굴드는 모든 것이 과잉인 것 같은 시대에서, 고독을 찬미하고 간결함을 추구하는 것의 매력을 역설한다. 사고한다는 것은 고독의 문제이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틈이 필요하다. 그리고 거기에서 생긴 '어떤 것'을 가지고 생각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무엇인가를 창조해낸다. 굴드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 사고를 통해 만든 것을 하나씩 지워나간다. 모든 것을 알면서도 덜어내는 미학. 그래서인지 굴드의 연주에는 한겨울 쨍한 겨울 공기같은 정서가 있다. 일체의 구질구질함 없는,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는데 청명한 배경을 뒤로 하고 있어서 반짝거리는 것 같은 풍경, 그래서 신성하게까지 느껴지는 음악을 만들어 낸다.

     

    예술 분야 중에서 언어화하기 힘든 장르 중 하나가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악기가 있고 악보가 있고 가사가 있고 공연이라는 장르가 있지만, 파동을 통한 소리와 음 자체는 실제로 듣지 않고서는 실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어떤 음악에 대해 설명하는 글은 음악의 배경 전달 혹은 음악 자체의 스토리에 대한 설명일 때가 많고, 특히 언어가 개입되지 않은 연주곡의 경우에는 그것을 묘사하고자 할 때 추상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도 어찌 보면 그런 면에서 아주 쉽게 써진 책은 아니지만, 굴드가 평생을 추구하려 했던 바의 분위기와 공기를 충만하게 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그의 생을 관통했던 정서, 즉 고독과 간결함을 읽어내려가면 오히려 번잡스러운 것들로부터 거리감이 생겨나며 정서적인 풍성함이 찾아오는 역설을 경험한다.

     

     

    덧.

    도서관에도 이 책 말고도 굴드에 관한 책이 더 있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그래픽 평전도 온라인으로 이용이 가능하니, 궁금하다면 조금 더 찾아보시길. 하지만 사실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음악 자체를 넘어설 수는 없으니 아래의 링크를 첨부합니다. :-)

     

    *이탤릭은 발췌 부분임.

     

    Glenn Gould. Goldberg Variations (1981)

     

     

     

    중앙도서관 학술서비스팀 유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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