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메타버스(metaverse)의 확산과 시뮬라시옹 문화의 극대화-송재룡(중앙도서관 관장/사회학과 교수)
    도서관 칼럼 2021. 11. 1. 16:17

    메타버스(metaverse)의 확산과 시뮬라시옹 문화의 극대화

     

    송재룡 (중앙도서관 관장 / 사회학과 교수)

     

    메타버스에 관한 얘기들이 넘쳐난다. 메타버스는 더 높거나 확장된 위치/상태를 뜻하는 메타(meta)공간이나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의미론적으로 광범위하게 확장된 사이버 공간을 말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이른바 5G - 초고속/초연결성/초저지연성 이동통신기술 상용화가 전 지구적으로 확산된 데에 있다. 이로 인해 기존의 2차원 수준의 사이버 공간 구성은 3차원의 수준으로 진화하게 되어,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이 구현된 사이버 공간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로써 사이버 공간에서 물리적 현실 공간의 인간 활동과 진배없는 소통과 상호작용을 재현할 수 있게 되었다. , 현실 세계와 융합된 3차원 가상적 세계가 펼쳐질 수 있게 되었다. 이미 다양한 메타버스 가상 융합 플랫폼들이 만들어져 제공되고 있으며, 그 확장은 상업적으로 급속히 퍼져나갈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영화 속의 매트릭스나 홀로그램 등이 이 가상 공간에서는 하나의 현실로 체험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페이스북 창업주 저커버그가 회사명을 페이스북에서 메타버스를 상기하는 메타로 변경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초기 사이버 공간의 2차원적 특성에 기초했던 페이스북의 자본주의적 수행성이 머지않아 메타버스라는 이름의 3차원적 사이버 공간에 의해 대체될 것으로 판단하고 그 공간을 기술 자본주의적으로 선점하고자 한 것으로 이해된다. 아직은 투기이지만, 필경 크게 성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메타버스 사이버 공간의 자본주의적 수행성의 가치가 급속히 증대하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저커버그의 예에서 예측되듯이, 머지않아 다양한 ()상업적 가상 융합 플랫폼에 기반한 사이버 공동체에서의 삶(상호작용)이 크게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이 3차원 사이버 공간이 구성하는 사이버 공동체에서 주체(아바타)가 체험하는 존재론적 상황은 일찍이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주목했던 시뮬라시옹 문화의 특성을 두드러지게 할 것이라는 점에서 자못 심각하다.

    우선 가상 주체인 아바타는 사이버 공동체에서의 제반 상호작용에서 실재(presence)감과 존재(existence)감을 느끼는 미묘한 감정 상태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이는 마치 장자(莊子)가 나비 꿈을 꾼 후, ‘내가 나인가, 나비가 나인가?’라고 말하면서 느꼈던 실재감에의 혼동된 상태와도 유사한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사이버 공동체의 체험에는 오프라인적 체험이 기초하고 있는 물리성과 사실성이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이버 공동체에서 아바타의 체험을 이해하고자 할 때, 물리적 현실 인간 세계에서 정의된 정체성, 상호작용, 질서, 규범, 권위, 권력 등에 대한 개념들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다음으로, 메타버스 사이버 공동체에서는 아바타의 개체성(individuality)이 무한하게 증대한다. 이것은 아바타의 익명성이 거의 무제한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주체의 정체성이 다중화된다는 말이다. 아바타의 정체성은 반드시 물리적 세상의 정체성과 일치하지 않는다. 물리적 공동체에서는 한 육체에 한 정체성(one body, one identity)’이라는 원칙을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사이버 공동체에서는 이 원칙이 무의미해져 다중적인 정체성이 형성될 수 있다. 이 상황에서 아바타는 통상 물리적 공동체에서 할 수 없는 일(업무)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통상의 공동체에서 준수되는 제반 규범적 룰이 작동하지 않기도 한다.

    또한 아바타의 다중적 정체가 만들어지는 사이버 공동체에서는 물리적 세계의 위계 구조의 형성 근거가 침식된다. , 사이버 공동체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는 물리적 세계에서의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들, 예컨대 외모(신체), 장애의 유무, , 인종, 나이 등과 같은 요인들의 영향력은 크게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아바타 다자 간 의사결정 과정에 대칭적으로 참여하여 솔직하고 개방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아바타의 존재론적 상황은 메타버스 사이버 공간의 구성적 본질이 초래하는 문제, 곧 아바타의 삶이 정보(지식)의 흐름에 의해 구성됨으로써 실재의 ()진정성에 관한 문제를 촉발한다는 사실이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아바타의 모든 경험, 곧 아바타의 상호 작용, 정체성, 질서, 권위 등은 본질적으로 정보 그 자체의 구현으로 나타난다. 이는 정보, 곧 기호나 이미지, 상징과 같은 비문자적 언어 요인들로 채워져 있는 사이버 공간의 본질적 특성에 관한 것이다.

    사이버 공간이 정보의 흐름으로 채워졌다는 것은 이 공간에서 기호나 이미지 상징과 같은 비문자적 언어 체계의 영향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이 공동체에서는 실재의 진정성에 대한 서사가 정당성을 잃어가는 문화적 특성을 갖게 된다. , 사이버 공간에서는 실재에 대한 진정적 앎에 관한 언설이 정당성을 상실하게 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보드리야르의 포스트모던 논의를 상기해 보자. 보드리야르는 기호로 꾸며진 메시지를 전달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미디어 확산이 야기한 시뮬라시옹문화의 존재론적 특성에 초점을 맞춘다. 그가 보기에 포스트모던 문화는 기호(또는 이미지와 상징)가 충만해 가는 문화이고, 또한 모든 것이 기호화(codification)되는 문화다. 예컨대, 인간의 신체 구조까지도 기호화된다. ‘진정한신체에 대한 표준은 없고 단지 그에 관한 의미 체계만이 기호로 꾸며진 채로 비진정적으로 난무한다. 따라서 이런 문화에서는 현실이나 실재가 아닌 그에 관한 의미를 담고 있는 초현실 또는 가상현실만을 체험하게 된다. 보드리야르는 이를 점증하고 있는 비문자적 기호 체계의 비진정성때문이라고 규정한다.

    물론 노년의 보드리야르에게 사이버 공간의 문화적 특성에 대한 비평은 시기상조였을 터이다. 하지만 그가 주목하고 있는 포스트모던 사회의 문화적 차원, 기호(정보)의 흐름또는 비문자적 언어 체계에 의해 구성된 문화의 특성, 특히 그로 인한 실재의 비진정성의 증대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공간은 무엇보다도 사이버 공간임을 부정할 수 없다.

    요약해, 메타버스 3차원 사이버 공간 속의 문화적 삶이 갖는 심각성은 문자적 언어 체계 이외에 점점 무한히 증대하게 되는 비문자적 언어 체계가 복합화되고, 이로 인하여 실재에 대한 비진정성이 더욱 증대된다는 데에 있다. 만하임(K. Mannheim)의 지식 사회학적 이해를 따른다면, 이 사이버 공간의 문화는 수많은 전망(perspectives)’이 공존함으로써 다원주의적 또는 상대주의적 파편화가 점증하는 문화이다. 이 문화적 상황에서 실재에 대한 진정성의 서사는 더욱더 위축된다. 이 점에서 사이버 공간의 문화를 살아가는 주체는 다중적인 자아의 위상을 갖고, 존재론적 불확실성을 체험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로 그려지게 된다.

     

     

    송재룡(중앙도서관장/사회학과 교수)

    댓글

경희대학교 중앙도서관 서울캠퍼스